[포토뉴스 - 전국]

5백년전 한글 편지



대전선사박물관(관장 윤환)에 따르면 지난해 유성구 금고동 제2매립장 조성현장에서 안정 나씨(安定羅氏) 묘에서 미이라와 함께 출토된 한글편지의 복원이 완료됐다고 20일 밝혔다.

500년 된 총 2점의 편지는 금고동 안정 나씨 종중 분묘 이장 중에 발견된 것으로, 나신걸(羅臣傑, 15C중반~16C전반 추정)의 부인 신창맹씨(新昌孟氏,연도 미상)의 목관 내에서 미이라·복식·명기 등과 함께 출토돼 출토 당시 미이라의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.

출토 후 국가기록원에 의뢰해 복원된 이 편지는 매장자 남편의 생몰년대로 추정해 볼 때, 지금까지 발견된 한글편지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알려진 순천김씨 묘 출토 언간(충북대박물관 소장, 1555년)보다도 앞선 16세기 전반의 것으로 추정된다.

이 편지는 당시 군관으로 멀리 나가 있던 남편이 고향에 있는 아내에게 보낸 것으로, 편지의 뒷장에 받는 사람이‘회덕 온양댁’이라고 수신인이 적혀있다. 

평소 남편에게 받은 선물과 같이 귀중히 간직하던 신창맹씨가 사망한 후 고인이 아끼던 편지를 같이 매장한 것으로 추정되며, 남편이 멀리 함경도 경성(鏡城) 군관으로 부임 받아 가면서 부인에게 안부와 함께 농사와 소작 등의 여러 가정사를 두루 챙기고 있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.

또 편지에 보이는 고어 한글은 정성스럽게 한자 한자 정갈하게 썼으며 부인에게 ‘~하소’라고 16세기에 주로 사용되었던 경어체로 표현돼 있어 조선 전기 부부간에 서로 존칭으로 대했음을 알 수 있다.

특히 이 편지는 16세기 전반 장례문화, 복식문화 및 한글고어 등 당시의 생활풍습을 추정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며, 조선시대 부부간의 정과 생활상을 그려볼 수 있는 뜻 깊은 자료이다. 

한편 이 편지는 오는 10월 개관예정인 대전역사박물관에서 현전하는 최고의 한글편지로서 최초 공개될 예정이다.
 
<편지 전문(현대역)>
- 번역 : 서원대학교 배영환 교수


안부를 그지없이 수없이 하네.
집에 가 어머님이랑 아기(?)랑 다 반가이 보고 가고자 하다가 장수(將帥)가 혼자 가시며 날 못 가게 하시니, 못 가서 (못) 다녀가네.
 
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꼬? 군관(자리)에 자망(自望,자기를 추천)한 후면 내(=자신) 마음대로 말지 못하는 것일세.
가지 말라고 하는 것을 구태여 가면 병조(兵曹)에서 회덕골로 문서를 발송하여 조회하여(照會--) 잡아다가 귀향 보내게 될까 하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꼬? 아니 가려 하다가 못하여 영안도(永安道, 咸鏡道)로 경성(鏡城) 군관이 되어 가네.

내 고도(古刀. =낡은 칼)와 겹철릭을 보내소. 거기는 가면 가는 흰 베와 명주가 흔하고 무명이 아주 귀하니 관원이 다 무명옷을 입는다고 하네. 무명 겹철릭과 무명 단철릭(=홑철릭)을 입을까 하네.

모름지기(반드시) 많이 하여 설을 쇠지 말고(=설을 쇠기 전에) 경성으로 굳게(=단단히) 하여 들여보내소. 옷을 (설) 못 미처 지을 것 같거든 가는 무명을 많이 보내소. 두 녘 끝에 토시를 쳐(=둘러) 보내소. 무명옷이 있으면 거기인들 옷이야 못하여 입을까? 민망하여 하네. 모름지기(반드시) 하여 보내소. 길이 한 달 길이라 하네. 양식을 브경이(인명?, 넉넉히) 하여 주소. 모자라지 아니하게 주소.

전지(田地, =논밭)의 (온갖) 세납이란 형님께 내어 주소 (말씀)하여 세납에 (대해) 대답하소. 공세(貢稅, =공물(貢物)는 박충의댁에 가서 미리 말하여 두었다가 공세를 바꾸어 두소. 쌀 찧어다가 두소.

또 골에서 오는 제역(除役, =면역(免役)) 걷어 모아 [뎝여] 주거늘 완완히(緩緩-) 가을에 덩시리(인명)에게 자세히 차려서 받아 제역을 치라 하소. 또 녹송이야 슬기로우니 녹송이에게 물어보아 제(저라고)가 대답하려 하거든 제역을 녹송이에게 맡아서 치라 하소. 녹송이가 저(이다)라고 대답하거든 골에 가서 뛰어다녀 보라 하소. 쉬이 길을 떠나게(?) [소□것] 많이 달라 하여 하소연하여 청하라 하소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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