인사말 & 프로필
1979년 어느 가을, 당시 한정식 총 조리사로 근무하던 중 지금의
아내와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. 잘못 걸려온 아내의 전화가 인연
이 돼 내겐 너무 힘겨운 사랑이 시작됐다. 그때 아내는 나를 거들
떠보지도 않았는데, 학력이라고는 초등학교 졸업뿐이던 나는 그저
벙어리 냉가슴만 앓았다. 그녀와의 진전없는 만남으로 몇 개월을
보내다가 1981년 혈혈단신으로 해외 취업을 결심하게 되었다. 한증
막 같은 열사의 땅, 중동에서의 생활은 힘겨웠지만 기다리던 그녀
의 답장을 받아보면서 언젠가 다가올 그날을 위해 자기계발에 힘을
쏟기 시작했다.
마침내 1984년 4월, 31개월 만에 그리운 고국 땅을 밟았다. 중동
에서 번 돈으로 미아리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귀국 28일 만에 그
녀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. 신혼의 단꿈도 뒤로 하고 결혼 16일 만에
1년만 일하고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중동으로 발길을 돌렸다.
1년 후 우여곡절 끝에 귀국했고, 공부에 대한 미련을 도저히 버
릴 수 없어 고입검정고시에 도전했다. 주경야독으로 공부한 보람도
없이 낙방의 쓴 고배를 마셔야 했다. 취직 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워
집을 팔아 장사를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아내의 완강한 반대로 눈
높이를 낮춰 서울역 앞 불고기정식집에 취직을 했다. 그 후 호텔 한
식당, 식품회사, 출장파티, 연수원 등에서 조리인으로 일하면서 기
반을 잡아갔다. 드디어 1990년, 고입 합격에 이어 이듬해 꿈에 그리
던 대학에 합격하게 됐다.
이제 선배들은 배고픔의 시작이 아닌 떳떳한 직업인으로 조리사
를 바라볼 수 있도록 인식을 바꿔 놓아야 한다. 또한 후배들은 조
리사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며 직업관을 확고히 해
야 한다.